지방대 출신으로 늦게서야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문화재청에서 재직하던 한정수 사무관이 있었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더 이상 승진하지 못하는 한계와 가족들로부터 소외되고 단절된 외로움이었습니다. 고지식한 데다 연과 줄이 없어 승진에서 매번 탈락하고, 힘든 일과 공허함을 이기기 위해 허전한 감정을 술로 채우기 십상이었습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아내와는 자연스레 각방을 쓰고, 아버지를 제외한 식구들은 어머니를 중심으로 하나가 되어 아이들과도 점점 멀어집니다. 설상가상으로 친구 의사로부터 췌장암에 걸려 그리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고 하는 선고를 받게 됩니다. 절망스러운 상황에서도 그는 이 무거운 짐을 홀로 감당하기로 합니다. 그리고 고통을 감추기 위해 술로 인생의 허무함을 이겨내려 합니다. 그러나 아내와 자식들의 눈에는 매일 밤 술에 취해 들어오는 주정뱅이에 불과하였습니다.
이렇게 홀로 죽음의 두려움과 싸우던 어느 날 딸 지원으로부터 편지를 받습니다. 딸로부터 편지를 받고는 기대와 대견함으로 편지를 읽습니다. 그러나 딸의 편지에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독설과 비난, 원색적인 미움의 감정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아버지, 전 지금 당신에게 몹시 실망하고 있습니다. 그 실망은 분노에 가깝습니다.”라고 시작되는 이 편지는 마지막 남은 생존 의지마저 꺾어버리는 잔인한 내용의 편지였습니다. “언제나 술 취한 모습, 그리고 비틀거리고 흔들리고 나약하고 볼품없는 모습. 왜 저희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 익숙해야 합니까?..... 제 기억에 남아 있는 그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 당신은 차라리 남이었습니다..... 전 정말 이제 술에 취한 아버지의 흔들리는 모습, 그리고 유치하고 천박한 주정을 더이상은 보고 싶지 않습니다..... 아버지를 사랑하고픈 딸” 그리고 이 편지 뒤에 추신을 남겼습니다. “아버지, 전 절대 이 편지 쓴 것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이 편지로 인해 받으실 아버지의 상처, 그것은 분명 아버지의 책임입니다.”
죽음이 임박해 오자 친구인 의사 남박사는 어쩔 수 없이 이 사실을 가족에게 알립니다. 뒤늦게 이를 안 가족들은 그동안 냉대했던 자책에 괴로운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가족여행을 하며 죽음을 준비하는 일에 동참하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김정현씨가 쓴 소설 “아버지”의 줄거리입니다. 이 소설에서는 가정과 사회에서 삶의 무거운 짐을 홀로 외롭게 감당하며 살아가는 이 시대의 아버지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강한 척 하지만 사실은 사회생활하면서 짓밟히는 자존심을 스스로 내려놓으며 가족을 위해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습니다. 깊은 외로움과 무거운 짐에 지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아내와 자식들에게는 존재감이 없고, 가족 중에 누구 하나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고 헤아리려 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이 소설은 우리 시대의 아버지를 대변하고 있다고 느껴지면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작품입니다. 세상에서는 무능력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가정에서는 가장으로, 사회의 구성원으로 힘겹게 살아가는 아버지를 돌아보게 해주었다는데 공감하게 했습니다.
아버지가 되고 보니 이 작품의 주인공의 아픔이 공감됩니다. 그런데 문득 우리도 작품 속의 딸과 가족처럼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향해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있다 하여 원망하고 불평하고 있지는 않은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우리를 위해 스스로 고난 당하시며 십자가를 지시기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묵상해 보았습니다. 종려주일로 시작되는 고난주간,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려보려 노력하는 한 주간이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