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를 전해드립니다. 참으로 신기하고 신비로운 일입니다. 지난 금요일 십자가에 달려 죽었던 예수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났습니다. 로마의 파견군대는 그의 무덤 문을 봉인하고 군인들이 굳건히 지키게 했지만, 그를 장사지냈던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을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예수는 십자가에 달려 죽기 전에 이미 여러 차례 자신의 죽음과 다시 살아날 것을 예고해 왔었습니다. 처음에는 그의 제자들도 믿지 못해 십자가 처형 후 낙심하여 고향으로 낙향했지만, 다시 살아나신 부활의 사실은 여러 곳에서 목격되면서 사실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만약에 그 당시 오늘날처럼 뉴스가 있었다면 예수님이 부활하신 첫 번째 주일 아침 헤드라인 뉴스로 이런 내용이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너무나 당연히 예수님의 부활을 받아들이지만, 첫 번째 부활의 목격자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이 되는 뉴스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우리에게는 의미와 가치가 완전히 달라진 것들이 생겼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십자가와 무덤입니다. 원래 십자가와 무덤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주지 못합니다. 십자가는 흉악범을 처형하는 사형틀이고, 무덤은 죽은 자를 안장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그 의미와 가치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보면서 우리를 대신해서 거기에 달려 온갖 고초를 당하시고 죽으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그분의 사랑과 희생, 그리고 대속(代贖)의 은혜로 인해 한없이 겸손해지고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무덤은 죽은 자가 머물러 있는 혐오시설이었지만, 예수님의 부활로 우리에게는 소망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부활에 관한 글을 읽다가 한 가지 특이하고 재미있는 내용이 있어서 소개해 드립니다. 전통적으로 부활절 아침에는 부활의 메시지로 인사를 나눕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라고 인사하면 “진실로 부활하셨습니다”라고 화답하는 것이 교회의 전통이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특이한 전통을 가진 곳도 있습니다. 러시아 정교회에서는 부활절 예배 순서에 일명 ‘부활절 웃음’(risus paschalis)이라는 특이한 순서입니다. 설교 도중에 회중들이 모두 큰 소리로 까르르 웃는 시간이라서 처음 경험하는 사람은 무척 당혹스러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의미를 알고 보면 이내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힘이 죽음의 모든 세력을 비웃는 시간으로 설명되는데, 그리스도의 능력이 죽음의 세력을 이겼으니 악한 세력은 까불지 말라는 뜻이겠지요. 물론 동방 정교회의 이런 전통이 낯설긴 하지만 부활의 메시지를 생각해보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부활절은 이렇듯 기쁨이 가득한 날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소망의 근거가 됩니다. 고난과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세력을 비웃고 다시 살아나신 날이 부활절입니다. 우리에게 어떠한 어둠의 권세와 죽음의 세력이 다가올지라도, 부활의 주님이 어둠과 사망권세를 다 이기고 무덤에서 죽음에서 살아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더이상 어둠과 사망권세가 함께 머무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