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몸은 신진대사를 위해 수분을 배출합니다. 만약에 수분을 배출하지 못하면 신진대사가 원활히 이루어지지 못하며 몸에 이상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몸이 배출하는 액체는 불결하고 더러운 것도 있지만, 고귀하고 의미 있는 것도 있습니다. 특히 땀, 눈물, 피, 이 세 가지는 타인을 위해 흘릴 때 더욱 가치 있는 것입니다. 땀은 누군가를 위해 수고할 때, 눈물은 공감하며 위로할 때, 피는 희생적 사랑을 실천할 때 흘리게 됩니다. 우리의 영혼도 흘려야 할 것들을 흘리지 못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마음속에 쌓여 있는 불안, 우울, 긴장, 슬픔과 같은 응어리진 감정을 밖으로 표출함으로써 마음이 정화되고 해소되는 것을 카타르시스(katharsis)라고 합니다. 고통과 슬픔, 억울함과 분노, 긴장과 불안, 소외감과 우울, 이런 감정을 흘려보내지 못하고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으면, 그것이 심리적으로 병리 현상을 만들어 내게 됩니다. 특히 극도의 애통함을 토해낼 때 자연스럽게 눈물이 흐르게 됩니다.
팔복의 두 번째 복은 ‘애통하는 자’입니다. 애통함이 애통함으로 끝난다면 애통함은 고통입니다. 욕심을 채우지 못해 느끼는 애통함, 회개하지 못하고 후회함으로 끝나는 애통함, 죄의 형벌이 괴로워서 느끼는 애통함과 같은 애통함은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그러나 올바른 애통함 뒤에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복이 될 수 있습니다. 애통함의 정도는 사랑하는 이를 잃었을 때 느끼는 애통함입니다. 우리는 무엇에 애통해야 할까요?
1) 자신을 위한 애통 – 자신의 죄 때문에 느끼는 애통함, 거룩함과 사명을 이루지 못한 자신의 연약함 때문에 느끼는 애통함, 하나님의 은혜가 지속적으로 공급되지 못함을 느낄 때 느끼는 애통함을 느껴야 합니다.
2) 가정을 위한 애통 – 우리 가정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이 온전히 실현되지 못할 때 많은 문제들이 생깁니다. 때로 자녀의 문제와 가족의 문제는 우리 마음의 기대나 소망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이로 인해 애통해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3) 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위한 애통 – 지금 한국교회는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안 좋은 뉴스에 어김없이 “또 교회야? 또 목사야? 또 예수쟁이들이야?”라는 인식이 팽배합니다. 세상을 구원해야 할 교회가 구원의 방해물이 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문화들이 압도하는 세상을 보며 애통해야 합니다.
4) 나라와 민족을 위한 애통 – 남북으로, 세대 간에, 이념으로, 분열되어 서로 갈라진 민족의 현실에 애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질 징조가 보임에도 하나님께로 돌아설 기미가 보이지 않는 현실을 보며 애통해야 합니다.
토마스 왓슨 목사님은 애통의 반대 개념은 돌 같이 굳은 마음, 무감각, 경직성이라고 했습니다. 차라리 놋쇠라면 용광로에 녹여서 복종하게 할 수 있지만, 돌 같이 굳은 마음은 깨져버리고 마는 무익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애통함이 있습니까? 애통함이란 기도하게 만들고, 기도를 통해 성령님의 위로를 얻게 됩니다. 애통함이 불평이나 후회나 다른 사람에게 비난하는 것으로 끝나면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눈물로 기도하는 것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위로를 얻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