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영적 침체는 하나님의 부재에서 시작되고, 부흥은 하나님의 임재에서 시작된다”는 명제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모세는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라고 하신 하나님의 부재에 관한 말씀이 얼마나 심각한 말씀인가를 알았기에, 진 밖에 장막을 치고 그곳에 들어가 하나님의 임재를 구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라졌던 구름 기둥을 회막에 내려보내시며 회막에서 친구와 대화하듯 모세와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모세는 이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동행으로 이어지기를 원했고, 더욱더 분명한 약속을 받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고 계심을 알 수 있는 증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라고 간구했습니다. 모세의 심정을 잘 알고 계신 하나님은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모세는 다시 확인하듯 간구합니다.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곳에서 올려보내지 마옵소서” 모세는 하나님 앞에 자신의 무능함과 연약함을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심에 대한 절대적 확실성을 원했습니다. 하나님은 “네가 말하는 이 일도 내가 하리니”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모세는 재차 간구합니다.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모세는 막연하게 하나님이 함께 가시겠다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을 분명히 확신할 수 있는 증거를 보여달라고 간구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보이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다만 얼굴은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지나갈 때 하나님의 등을 보게 될 것이라고 약속해 주십니다.
부흥은 한 번 은혜받은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 이상을 갈망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한 번의 응답으로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더 분명하고 확실한 것을 구합니다. 오늘 본문에도 모세는 세 번이나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내는 기도를 강청하듯 구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결국, 금 송아지 사건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위기 가운데 놓였던 이스라엘은 모세의 간절한 기도로 다시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런즉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출 32:10)”고 하셨던 적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목숨을 건 중보기도로 진노를 돌이키게 한 모세는 다시 살리시고 부흥케 하실 것을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기도로 다시 부흥의 전기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부흥은 한 번도 사람들이 많이 모이거나 교회의 재정이 풍성해지거나 프로그램이 활력 있게 진행되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부흥의 본질은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동행하심과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더욱더 분명하고 강력하게 나타내심을 보는 것입니다. 교회도 천하 만민과 구별되는 공동체, 즉 교회가 교회다워지게 되는 것이 부흥입니다. 나머지는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임재가 회복되고, 잠깐 임재하시고 마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동행하시며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분명하고 강력하게 나타내시기를 사모하며 기도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