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피나 껍질을 벗어버리고 이를 교체하는 생물학적 과정을 탈피(脫皮)라고 합니다. 곤충은 애벌레일 때 몸이 커지면서 더 크게 자라기 위해 여러 번 허물을 벗게 됩니다. 괴테가 “탈피하지 못하는 뱀은 죽는다”는 말을 했듯이, 피부가 상하여 굳어진 껍질을 주기적으로 허물을 벗어내지 못하면 자신의 껍질에 갇혀 죽게 됩니다. 여기에서 탈피는 ‘낡은 습관이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감’이라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세상은 변하는데, 자신만의 고집이나 고정관념에 머물러 있게 되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또한, 뱀이 살면서 생긴 상처로 굳어진 껍질이 생명에 위협이 되듯이, 우리의 신앙도 비본질적인 요소들이 첨가되면서 변질되기 쉽습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잘못된 허물을 벗어버리듯 옛것을 벗고, 다시 본질로 돌아가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갈라디아교회도 신앙의 탈피, 개혁이 절실하게 필요했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교회를 향하여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라고 한탄하며 책망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바울로부터 복음의 진수를 전해 받았고, 성령의 역사하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교 율법주의자에 물든 성도들로부터 ‘다른 복음’을 전해 듣고, 믿음의 근간이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보통은 안 좋은 것에서 좋은 것으로, 저급한 것에서 고귀한 것으로, 낡은 것에서 새것으로, 비본질적인 것에서 본질적인 것으로 바뀌어갑니다. 그러나 잠깐 방심하는 사이에 거꾸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모든 생명체는 동일한 생태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늘 변하게 됩니다. 생명체의 변화를 막을 방법은 없습니다. ‘변화와 변질, 부패와 발효’는 겉모양은 비슷해 보이지만 변하는 질이나 내용은 완전히 다릅니다. 무해한 곰팡이에 의해 발효된 것은 인간에게 유익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해로운 곰팡이에 의해 부패된 것은 인간에게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부패하듯 해로운 인생을 사는 사람이 있고, 시간이 흐를수록 완숙하고 존경할만한 멋진 인생을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늘은 1517년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킨 지 504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504년 전에 종교개혁을 일으키며 생겨난 개신교(the Reformed Church)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있을까요?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넷플릭스의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등장하는 기독교인의 모습은 가히 충격적입니다. 오직 나만 살아남겠다고 기도하고,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공격하겠다는 신실한 교인, 아내와 딸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결국 아내를 죽인 목사, 상대방의 상황이나 힘든 모습은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는 전도자, 이것이 오징어 게임에 등장하는 교인들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설정이 큰 거부감이나 무리 없이 사회에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기를 얻은 드라마에 기독교인들을 이렇게 묘사했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기독교와 교인들을 이렇게 바라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부패한 가톨릭교회를 개혁했던 개혁교회가 이제는 개혁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종교개혁의 정신을 이어받은 개신교는 “개혁된 교회는 계속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는 모토를 이어받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본질로 돌아가고, 개혁해 가지 않으면 또 다시 변질되고,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번 종교개혁주일을 맞아 지금 나는, 지금 우리는 어떻게 변화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