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1년 마지막 주일입니다. 그래서 송년 주일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교회력으로는 ‘성탄 후 첫째 주일’입니다. 성탄의 의미는 성탄절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로 우리에게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성탄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변화는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아들을 우리에게 보내신 의미를 설명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우리에게 오신 것은 하나님이 정확한 때에 하나님의 방법대로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보내신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은 가장 정확한 때, “때가 차매”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 모든 것을 준비하시고 정확한 때에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정하신 카이로스의 때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오심으로 이 세상은 새시대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실 때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신성만 가지고 오신 것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인간의 몸을 입고, 율법의 제약 속에 오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우리를 속량하기 위하심입니다. 율법은 우리가 죄로 인해 받아야 할 처벌을 요구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지은 죄에 대해 대신 처벌받으셨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죄와 사망의 속박에서 해방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보내신 목적은 우리에게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여 종이 아니라 아들이 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단지 노예 신분에서 속량하여 해방시키신 것에 그치지 않고, 양자로 입양하여 법적으로 아들의 지위와 권리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자는 이후로 종이 아니요, 아들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법적으로만 아들의 신분을 얻게 하신 것이 아니라,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어 예수님이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는 자녀에게 주어지는 특권은 아버지의 유업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상속자가 되는 것입니다. 벤허라는 영화의 주인공 유다 벤허가 노예로 전락해 로마 집정관 퀸투스 아리우스의 군함에 노 젓는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 배가 해적들의 습격을 받아 침몰할 때, 벤허는 집정관 퀸투스 아리우스의 목숨을 구해줍니다. 퀸투스 아리우스는 유다에게 너무 감사한 나머지 유다를 양자로 입양하고, 자신의 가문을 잇고 모든 소유를 상속할 후계자로 임명하며 가문의 반지를 빼어 벤허의 손에 끼워줍니다. 죄수번호 41번으로 불려졌던 유다 벤허는 한 순간에 로마의 명문 귀족의 상속자가 됩니다. 벤허는 퀸투스 아리우스의 목숨이라도 구해준 공을 세웠지만, 우리는 주님을 위해 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를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저는 이 은혜를 감지덕지의 은혜라 표현하고 싶습니다. 분에 넘치는 은혜를 입고 감읍(感泣)할 일입니다. 죽음에서 건져주신 것만도 감당할 수 없는 은혜인데,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를 용서하시고 자녀로 삼아주시고, 아버지의 모든 것을 유업으로 받아 누리게 하시니 그 은혜를 어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며 더 친밀하게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