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시대는 눈에 보이는 것을 믿는 시대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은 허상이요 관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 눈으로 확인해야 믿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을 듣기만 하고도 믿는 믿음을 원하십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행하신 두 번째 표적으로 예수님께서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가셨다가 다시 갈릴리로 올라오시면서 사마리아에 들려 수가성 여인을 만나주신 사건에 연결되는 본문입니다. 43절에 “이틀이 지나매”라고 했는데, 사마리아 여인과의 만남 후 이틀이 지난 후에 갈릴리로 가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마리아에서 지체하는 중에 예루살렘에서 출발한 다른 이들은 이미 갈릴리에 도착해서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행하신 일들을 보고 믿는 자들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소문이 퍼지자 예수님이 오시기를 간절히 기다리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 왕의 신하입니다. 그 아들이 병들어 죽을 지경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1. 누구나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날 수 있습니다. - 사람은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자신이 해결합니다. 그러나 때로 내가 가진 힘이나 동원할 수 있는 방법을 총동원해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나기도 합니다. 왕의 신하라는 권력도 아무 소용이 없는 상황입니다. 게다가 아들이 죽어가는 다급한 시간 다툼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내 인생 좀 책임져 주세요.”라고 다급하게 하나님을 찾아야 할 상황을 만나보지 않았습니까?
2. 모든 체면 불사하고 예수님을 찾아 나와야 합니다. - 죽어가는 아들을 위해 뭐라도 해야 했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아들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볼 수만은 없었습니다. 마지막 남은 방법은 소문으로 들려온 예수님을 모셔와서 고쳐주시기를 바랄뿐입니다. 사마리아에서 돌아오시기까지 기다리는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왕의 신하는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두 번이나 아이가 죽기 전에 가버나움으로 내려오셔서 병을 고쳐달라고 간청합니다.
3. 이해할 수 없는 반응과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 다급한 아비의 마음을 읽고 선뜻 나서서 집으로 와주시면 좋겠는데, 예수님은 왕의 신하와 기적을 기다리는 자들에게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거절처럼 들립니다. 포기할 수 없어서 다시 간청하자 주님은 “가라. 네 아들이 살아있다”는 말씀만 하실 뿐이었습니다. 놀랍게도 왕의 신하는 말씀을 믿고 집으로 갔습니다. 나아만도 엘리사의 푸대접에 화가 났지만, 순종하고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나병이 낫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4. 하나님이 하신 일을 기대하고 확인해야 합니다. - 믿고 집으로 내려가는 길에 집에서 온 하인을 만나 아이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왕의 신하는 지체하지 않고 그 낫기 시작한 때가 언제인지 묻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아있다고 말씀하신 그때인 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와 그 온 집안이 다 믿기로 결단합니다.
예수님은 가나에 계셨고, 왕의 신하의 아이는 가버나움에 병들어 있습니다. 가나에서 말씀하실 때, 가버나움에 있는 아이가 나았습니다. 왕의 신하의 믿음이 훌륭한 것은 아들이 나은 것을 보거나 확인하지 않고, 말씀을 믿고 내려갔다는 것입니다. 우리 눈앞에 보이는 힘든 상황과 여건들, 주님이 주시는 말씀으로 이겨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