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가장 민감한 것은 먹는 문제입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나 ‘목구멍이 포도청’, ‘사흘 굶어 도둑질 안 할 사람 없다’ 이런 속담들이 전해지는 것을 보면 그만큼 배고픔의 문제는 민감하며, 본능적인 욕구입니다. 요한복음에 기록된 일곱 가지 표적 중에 네 번째 표적은 오병이어의 기적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이런 민감한 문제를 해결해 주심으로 예수님이 생명의 떡이 되심을 보여주십니다. 특히 4복음서에 모두 기록된 유일한 기적입니다. 복음서 저자들이 모두 기록했다는 것은 그만큼 인상적이고 중요한 사건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복음서의 저자마다 보는 관점이 다르고, 설명하는 내용이 다른 부분이 있어서 4복음서를 종합적으로 이야기를 재구성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헤롯 안티파스는 세례 요한을 참수하여 처형합니다. 세례 요한을 선지자로 믿고 의지하던 백성들의 마음은 허무함과 허전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더 많아졌습니다. 예수님은 모여온 자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시기도 하고, 병자를 고쳐주시기도 하셨습니다(마). 그들이 예수님을 따라나선 지 사흘이나 지나면서 굶주리게 되었고, 멀리서부터 온 자들은 그대로 돌려보내면 길에서 기진할 것을 아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막). 그러던 차에 제자들은 장소는 빈들이고, 시간은 날이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로 들어가 각자 먹을 것을 사 먹게 해서 해결하자고 요청합니다(마). 그러나 예수님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시면서 빌립에게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고 물으십니다. 빌립은 재빨리 계산해서 노동자 하루 품삯인 데나리온 계산으로 겨우 시장기나 면할 정도로 먹여도 200데나리온도 부족하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안드레가 ‘이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라고 하며 한 아이가 가져온 도시락인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져옵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들을 떼를 지어 50명씩 앉게 합니다(눅). 그리고 보리떡과 물고기를 가지고 축사하신 후에 보리떡과 물고기를 차례로 제자들에게 주면서 모인 곳에 나누어주도록 했습니다. 제자들은 사람들이 모인 원에 열심히 뛰어다니며 배식했습니다. 배불리 식사를 마치고, 혹자는 남은 음식을 가져가려고 쌌을 것입니다. 그리고도 열두 바구니(마가복음은 일곱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처음 가져온 오병이어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이 배불리 먹고도 남은 음식이었습니다. 음식이 무한 배가되는 현상이 예수님의 손에서 일어났는지, 아니면 50명씩 앉은 사람들 가운데 놓은 바구니에서 하나님이 역사하셨는지, 누구도 그것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돌항아리의 물을 떠서 연회장에게 가져다줄 때, 언제 물이 포도주로 바뀌었는지 설명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이 사건에 대해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에서 이 표적의 의미를 설명합니다. 이미 어떻게 그들을 먹이실 것인지 계획하고 계셨지만, 오병이어의 표적으로 제자들의 믿음을 시험하는 기회로 삼으셨습니다. 주목할만한 제자는 빌립과 안드레입니다. 계산에 빠르지만, 대안이 없고, 자신의 한계에 빠져 믿음의 안목이 없었던 빌립과 보잘 것 없는 것임을 알지만, 주님께 가져오면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나온 안드레의 모습입니다. 또한 그들의 경제적 사정이나 시장 상황은 고려하지 않은 채, 각자의 문제는 각자 해결하도록 돌려보내라는 무책임한 제자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우리는 어떤 모습을 보이는 제자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