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우리 인생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선택은 우리 자신에게도 영향을 주지만, 다른 사람에게도 영향을 줍니다. 영향력이 큰 사람의 선택은 더더욱 중요합니다. 오늘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선택한 사람들의 선택과 그 결과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사법제도는 그 사회의 공정과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입니다. 솔로몬의 판결과 같은 명재판도 있고, 빌라도의 재판과 같은 최악의 재판도 있습니다. 복음서를 종합해 보면 예수님은 총 여섯 번의 심문을 받으십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 앞에서 세 번(안나스, 가야바, 산헤드린공회), 로마 당국자들 앞에서 세 번(빌라도, 헤롯, 빌라도) 심문을 받고, 최종 십자가 형을 받게 됩니다. 이 재판들은 모두 불법성이 있습니다. 강제연행, 불법심문, 졸속판결, 신속처형과 같은 문제가 있습니다. 사람의 목숨이 달린 문제인데, 경범죄처럼 즉결심판처럼 1심으로 판결하고, 당일에 집행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을 방어하거나 무죄를 입증하려고 반론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죽을지도 성경의 예언을 응하게 하려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선택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고, 성경의 예언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외의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잘못된 선택을 했습니다.
1) 대제사장과 종교지도자들 – 예수님에 대한 시기심이 있었습니다(10절).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겼습니다. 스데반처럼 자신들의 종교법으로 투석형에 처할 수도 있었지만, 로마법에 의해 빌라도의 판결로 예수님을 죽게 했습니다.
2) 빌라도 – 예수님을 심문하는 과정에서 유대인들이 고발한 반역죄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임을 알고 특사로 풀어주려 했지만, 민란을 막기 위해 정치적 판결로 바라바를 풀어주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넘겨주었습니다.
3) 무리들 – 처음에는 호산나(지금 우리를 구원하소서)를 외치며 구원자로 영접했지만, 대제사장 무리의 충동으로 여론몰이를 당해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소리지르는 자가 되었습니다.
대제사장과 종교지도자들은 인기를 얻어가는 예수님에 대한 시기심과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고자 잘못된 선택을 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의 무죄함을 알았지만, 자신의 안전을 위해 정치적 판결로 무죄한 예수님을 십자가에 넘겨주는 잘못된 선택을 했습니다. 무리들은 예수님을 구원자로 환호하며 영접하다가,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돌변하며 배후에서 여론몰이로 조종하는 사탄의 세력을 보지 못하고 잘못된 선택을 했습니다.
우리도 이 세 무리들 어디엔가 서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살아가는지, 무슨 동기로, 무슨 원칙으로 선택하며 살아가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대세가 아닌 대의를 따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 주류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포기하고 내가 선택한 바라바는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