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靑春)!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청춘! 너의 두 손을 가슴에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鼓動)을 들어 보라. 청춘의 피는 끓는다. 끓는 피에 뛰노는 심장은 거선(巨船)의 기관(汽罐)과 같이 힘있다. 이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꾸며 내려온 동력은 바로 이것이다. (중략) 이상! 우리의 청춘이 가장 많이 품고 있는 이상! 이것이야말로 무한한 가치를 가진 것이다. (중략) 보라, 청춘을! 그들의 몸이 얼마나 튼튼하며, 그들의 피부가 얼마나 생생하며, 그들의 눈에 무엇이 타오르고 있는가? 이것은 피어나기 전인 유소년에게서 구하지 못할 바이며, 시들어가는 노년에게서 구하지 못할 바이며, 오직 우리 청춘에서만 구할 수 있는 것이다. 청춘은 인생의 황금시대다. 우리는 이 황금시대의 가치를 충분히 발휘하기 위하여, 이 황금시대를 영원히 붙잡아 두기 위하여, 힘차게 노래하며 힘차게 약동하자! - 민태원, 청춘예찬(靑春禮讚)
청년세대 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은 헬조선, 취업난, 이생망, N포세대과 같은 것들입니다. 희망 없음, 차별, 불안, 갈등, 양극화, 소외, 불공정, 이런 감정들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청춘예찬에서 노래한 청춘에 대한 찬미와는 거리가 먼 현실입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지나고 나면 청춘이 소중하고, 그때가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프랑스 작가 아나톨 프랑스는 “만약 내가 신이었다면, 나는 청춘을 인생의 끝에 두었을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지나간 청춘에 대한 아쉬움을 묘사했습니다.
얼마 전부터 교회는 다음세대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청년들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청년들 67%는 우리 사회가 청년세대에 무관심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청년들은 기성세대의 청년시절보다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노력하면 상층으로 이동할 가능성도 없다고 생각하며, 노후에도 지금의 기성세대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삶을 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청년들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요?
사도행전 8장에 보면 성령께서 사마리아에서 사역을 잘하고 있던 빌립을 광야로 가게 하셨습니다.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있었습니다. 동기는 분명치 않지만, 그는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까지 먼길을 찾아온 신앙인이었고, 당시에는 너무 비싸서 보통 사람은 엄두도 못 낼 이사야서 성경 사본을 사서 소장했으며, 돌아가는 길에도 열심히 읽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읽으면서도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빌립이 친절히 설명하여 깨닫게 해 주었고, 세례받기를 원하여 세례까지 받게 됩니다. 성경에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와서도 깊숙이 참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사람을 내시라고 소개했습니다. 고환이 상한 자나 음경이 잘린 자는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올 수 없다(신 23:1)는 율법에 의해 거부당하고 소외된 자였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하나님을 예배하러 왔지만, 공동체에서 소외되어 마음 한편에 허전함을 가지고 돌아가는 이에게 빌립을 보내어 그를 만나주시고,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세례를 베풀어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으로 받아들여 주셨습니다. 청년주일을 맞아 우리 청년들이 아직은 교회 안에 있지만, 교회의 중심에 서지 못하고 소외되고 외곽에 밀려나지 않도록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