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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필리핀 빈민촌 의료봉사 다녀온 여의사들
하루 1300건 진찰…휴가보다 달콤한 경험했죠
기사입력 2011.02.06 18:46:09 | 최종수정 2011.02.06 20:43:22 트위터 미투데이 블로그 스크랩
지난 5일 필리핀 북부 지역 대표적 빈민촌인 나보타스시(市).

30도를 웃도는 기온에 비까지 내리며 후끈한 열기가 숨을 막히게 한다.

시청사 앞에 마련된 임시병원. 한증막 같은 날씨 속에서 한국인 여의사 40여 명이 이마에 맺히는 땀방울을 연방 걷어내며 몰려드는 환자들을 돌보고 치료했다. 길게 늘어선 환자들로 시청 앞마당은 종합병원을 방불케 했다.

한쪽에 마련된 수술실에서는 성형외과 의사 이혜경 씨(54)가 손수 만든 임시 수술대에서 종양제거술, 봉합술 등 수술을 하루 평균 7건 시행했다. 평소 환자 한 명을 수술하기 위해 7차례나 세부수술을 할 정도로 꼼꼼한 그는 "시간이 부족한 만큼 한 번에 완벽하게 수술을 마무리하기 위해 애썼다"고 말했다.

종양으로 고열에 시달리던 36세 현지인 남성은 이혜경 의사에게 수술을 받고 목숨을 건졌다. 그는 "한국에서 온 의사 선생님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며 기뻐했다.

설 연휴가 시작된 2일 한국인 여의사 42명이 필리핀으로 떠났다. 세부나 보라카이 같은 관광지가 아니라 필리핀 대표적 빈민촌인 나보타스시 해상 판자촌을 찾았다. 컵라면과 김밥으로 끼니를 때웠다. 한가로운 휴양이나 관광 대신 이들이 택한 것은 의료봉사활동이었다.

이들은 양의사, 한의사, 치과의사, 기공사 등으로 구성된 `여성의료인주요연합회(여의주)` 회원들. 지난해 여의주 회원들은 국외 봉사에 적극 나서기로 의기투합했다. "과거 우리나라가 선진국에서 많은 의료 혜택을 받았으니 이젠 저개발 국가에 도움을 줘야 한다"고 뜻을 모았다.

바쁜 진료 일정 때문에 평소 휴가 내기도 어려운 이들. 내친김에 첫 번째 봉사는 닷새나 되는 이번 설 연휴를 택했다. 2일 오전 11시 50분 필리핀 마닐라공항에 도착한 여의주 회원들이 나보타스 판자촌에 도착했을 때 접한 실상은 예상보다 훨씬 열악했다.

필리핀 나보타스 시청 앞에 마련된 진료소 천막에서 한원주 내과 의사(왼쪽)가 현지 할머니의 건강 상태를 진단하고 있다. <사진 제공=등대복지회>

한의사 류은경 씨(48)는 "바다 위에 지은 판잣집은 낡아서 곧 쓰러질 것처럼 보였고, 주민들은 오물로 오염된 환경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었다"고 전했다.

나보타스 시청 앞에 임시 병원을 차리자마자 소식을 듣고 현지 주민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이들이 진료봉사를 하는 동안 찾아온 환자는 하루 평균 110여 명. 진찰 횟수도 하루 평균 1300여 건에 달했다. 환자 한 명당 보통 10개 이상 질병에 시달릴 정도로 의료ㆍ보건환경이 열악했다는 말이다.

치기공사 이수연 씨(49)는 "하루에 100여 명에 이르는 환자를 보느라 정신없었지만, 치아를 되찾고 행복해하는 환자들 모습에 피곤함이 싹 가셨다"며 기뻐했다.

이번 국외봉사단 최고령자는 의료계에서 `봉사의 대모`로 통하는 내과의사 한원주 씨(85). 고혈압, 위궤양, 녹내장 등으로 본인 몸도 성치 않았지만 뜨거운 햇볕과 매연 속에서도 끝까지 진료실을 지켰다. 그는 "질환 때문에 내가 먹을 약도 함께 챙겨왔다"며 "자식들이 내키지 않으면서도 `어머니 하고 싶은 일은 다하시라`고 보내주더라"고 말했다.

위아래 치아가 하나도 없던 60대 할머니가 틀니를 끼고 달라진 모습에 주민들 모두가 박수를 치면서 현장이 순식간에 축제마당으로 변하기도 했다.

현지에서 이들 의료봉사를 지원한 장창만 등대복지회 이사장은 "이번에 참여한 모든 분이 거의 초인적인 힘을 발휘했다"며 "항공권 등 여비는 물론 방사선, 초음파 기기 등 치료 장비와 한약재 등 약까지 대부분을 의사 개인이 직접 부담했다"고 설명했다.

집에서는 어머니, 며느리, 딸로 매년 가족들과 명절을 보내온 이들에게 설 연휴 국외 의료봉사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박경아 봉사단장(61ㆍ연세대 의대 해부학 교수)은 가족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신정에 차례를 미리 지냈다.

몇몇 엄마 의사들은 자녀와 함께 봉사에 나서기도 했다. 외과의사인 엄마 최은아 씨(43)를 따라 이곳에 온 예선영 양(11)은 "엄마가 정말 자랑스럽다"며 "엄마 같은 의사가 돼 필리핀 친구들처럼 열악한 환경 속에서 제대로 된 의료 혜택을 못 받고 있는 친구들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닷새간 봉사 일정을 마치고 7일 새벽 인천공항에 도착한 이들은 내년 봉사를 기약하며 각자 일터로 돌아갔다. 치과의사 김은숙 씨(56) 는 "닷새간 달콤한 연휴는 반납했지만 평생 동안 가슴 뿌듯해할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임영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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