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광모 시인의 “이길 수 없는 것들”이라는 시가 있습니다(썰물도 없는 슬픔 中).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고, 겨울은 봄을 이길 수 없다.
상처는 사랑을 이길 수 없고, 절망은 희망을 이길 수 없다.
불운은 열정을 이길 수 없고, 불행은 감사를 이길 수 없다.
머리는 심장을 이길 수 없고, 불가능은 의지를 이길 수 없다.
나의 시련은 나의 꿈을 이길 수 없고, 나의 고난은 나의 믿음을 이길 수 없다.
이 세상에는 절대로 이길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중에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죽음은 부활을 이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죄가 이 세상에 들어온 이후에 우리는 생로병사의 거대한 흐름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 자연질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달라질 수 있고, 그것을 증명하신 것이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님을 사망의 어두운 그늘아래 그냥 두지 않으셨습니다.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사망권세를 이기고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부활주일입니다. 부활은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이 전제될 때, 의미가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주일학교에 가서 설교를 하면서 “여러분, 어떻게 해야 천국에 갈 수 있지요?”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라는 대답을 기대한 것이 무색하게 한 아이는 “죽어야 갈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죽어야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고난과 십자가를 통과한 자만이 부활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부활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믿음으로 고백하지만, 부활 당시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의 부활 예고를 들은 제자들에게도 믿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이 무덤에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다고 선포합니다.
양광모 시인의 이길 수 없는 것들이라는 시의 용어를 빌리면 우리는 여전히 어둠, 겨울, 상처, 절망, 불운, 불행, 불가능, 시련, 고난과 같은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빛, 봄, 사랑, 희망, 열정, 감사, 심장, 의지, 꿈, 믿음을 주셨습니다.
금년 부활주일은 코로나의 고난 중에 맞이하게 됩니다. 고난은 우리를 절망시키지 못합니다. 우리에게는 부활의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불신앙은 절망이라는 말 등 위에 올라타고 온다는 말이 있듯이, 현실의 고난과 그 고난으로 인한 절망은 부활의 은혜와 능력을 잊게 만들 수 있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바라보고 만나는 부활절이 되어야 합니다. 빈 무덤을 보고 절망에 빠졌던 마리아들, 소망 없이 고향으로 돌아가 다시 버려두었던 그물을 잡고 있던 제자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보며 허탈하게 돌아섰던 무리들, 이들이 부활의 주님을 만났을 때, 그들은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BC(기원전, Before Christ)와 AD(기원후, Anno Domini)의 차이가 우리의 인생과 신앙에도 분명하게 드러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