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씨(삶)
우리가 믿음으로 사는 목적은 무엇일까. 우리는 쉽게 행복을 말한다. 물론 행복해야 한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과 기쁨으로 행복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목적이 아니며 추구해야 할 바도 아니다.
진정 성도들이 추구해야 할 참된 가치는 거룩이다. 믿음으로 사는 성도들의 목적은 거룩이어야 한다. 이것이 흔들리면 안 된다. 다시 말하면 성결된 삶을 살아야 한다. 성결된 삶이 이루어지면 그곳에 행복이 있다.
행복해지려는 욕심 때문에 우리들은 얼마나 많은 거룩을 잃어버렸는지 모른다. 진정한 행복은 거룩에서 오는 것을 몰랐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까지 값싼 행복을 위해 잘못 살아온 것이다. 거룩이 없는 값싼 행복을 구하는 교회들은 오히려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하고 말았다. 거룩이 없는 행복을 구하는 성도들의 잘못된 신앙생활은 세상 사람들이 복음으로 올 수 있는 길을 막고 말았다.
이제는 분명히 바로 잡아야 한다. 우리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요 거룩이라는 것을, 진정한 가치는 거룩한 삶에 있다는 것을 말이다.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에서 “역사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 발전하는 것이 아니다. 비전을 갖고 미래를 향해 오늘 닥쳐오는 시련을 이겨나가는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새롭게 창조되어 나간다”고 했다. 내일을 만들어가는 기수들을 ‘창조적 소수’라 칭했다.
성경에서 같은 뜻을 가진 말을 찾아보니 ‘그루터기’와 ‘거룩한 씨’가 있었다. 큰 나무를 베어내도 그루터기는 남는다. 그 그루터기에서 새순이 나는 날이 온다. 그래서 그루터기를 ‘거룩한 씨’라고 하고 ‘남은 자의 사상’이라고도 한다.
창조적 소수와 남은 자가 다른 점이 있다면 전자는 자신이 똑똑해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역이 되는 사람이지만 후자는 자신이 똑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 남은 자라는 점이다. 세상에 믿을 만한 사람이 없다고 원망하고 한탄할 것이 아니라 내가 믿을 만한 사람이 되면 된다. 이것이 ‘거룩한 씨앗’이 되는 길이다.
“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레위기 19: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