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과천선(改過遷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나간 허물을 고치고 선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남이라는 뜻입니다. 스스로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 있거나, 다른 사람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완전히 새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이 자주, 쉽게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쉽게 고쳐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고쳐 쓰는 것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하고, “개 꼬리 삼 년 묻어도 황모 되지 않는다”라는 속담도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예수를 믿음으로 완전히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것은 예전에 비해 조금 성장했다거나 조금 변화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예전보다 조금 세련되지고, 점잖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첫 창조에 버금가는 재창조로 완전히 새롭게 탄생한 것을 의미합니다. 예전의 모습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180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듭남입니다. 거듭남을 중생(重生), Born Again이라고 합니다. 완전히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합니까? 이전 것은 지나갔고,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하면서 나의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혹시 말로만 새로운 피조물이고, 속사람은 여전히 옛사람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1)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자기정체성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지만, 그 사실을 잊고 살기 쉽습니다. 그래서 너무 쉽게 옛모습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아버지 학교를 하면 모일 때마다 “주님, 제가 아버지입니다”라고 구호를 외칩니다. 세상에 바빠 아버지임을 잊고 사는 자에게 아버지임을 자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2) 육신을 따라 알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육신을 따라 알려 합니다. 이것은 사람의 기준으로, 세상의 기준으로, 나를 기준으로, 옛사람의 기준으로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은 가치 기준이 그리스도가 됩니다. 사람에 휘둘리지 않고, 다른 것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나는 죽었다는 것이고, 오직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3) 화목하게 하는 직분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화해의 하나님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화해와 화해를 이루기 위한 속죄의 사건으로 설명합니다. 세상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기 위한 사건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자는 세상을 화목하게 하는 사명과 직분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화목하게 하기는커녕 분열과 다툼과 분쟁의 중심에 서 있기도 합니다. 고린도교회도 바울파, 게바파, 그리스도파 하면서 분파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 세상은 나와 다른 사람들이 살아갑니다. 가정에도, 교회에도, 직장에도, 친구들도 나와 같은 사람은 없습니다.
4)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使臣)이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화목제물이 되셨음을 믿는다면 우리의 삶은 달라져야 합니다. 단순히 나만 믿고 천당가면 된다는 이기적인 신앙을 초월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신으로 오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