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연말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교회력으로는 오늘이 연말입니다. 교회력은 다음 주부터 시작되는 그리스도의 오심을 준비하는 대림절로 시작하고, 대림절 전 주를 ‘왕이신 그리스도 주일’로 지키면서 시작과 끝을 그리스도 중심으로 구성하고 있습니다. 의미적으로 본다면 마치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예고편처럼 그리스도가 왕이심을 선언하면서 마무리하고, 왕이신 예수님의 오심을 기억하며 준비하는 대림절로 한 해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장면입니다. 4복음서 모두 십자가에 달린 죄패를 강조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목이 적혀 있습니다. 이 죄패에 적을 죄목으로 대제사장들과 빌라도 사이에 실랑이가 있었습니다. 대제사장들은 유대인의 왕이라 쓰지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쓰라고 요구했지만, 빌라도는 내가 쓸 것을 썼다 하며 유대인의 왕이라고 적었습니다. 조롱의 의미로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고 적으려 했지만, 역사는 유대인의 왕을 인정하는 결과를 만들어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양쪽에 함께 처형된 흉악범이 있었습니다. 군인들, 관리들, 백성들, 심지어 한편 행악자마저도 예수님을 조롱하고 비방하였지만, 한편 행악자는 비방하는 행악자를 꾸짖으며 예수님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기원합니다. 그 결과 그는 세상 법정에서는 십자가 사형에 처할 흉악범으로 인생을 마쳤지만, 예수님께는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약속을 받게 됩니다. 구원의 은혜는 인생 마지막까지 열려 있음을 보여줍니다.
기억은 단순히 과거의 경험이나 지식을 저장하는 능력이 아니라, 그 기억을 매개로 은혜와 긍휼과 구원의 손을 펼치는 동력이 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기억하신다는 ‘자카르’는 그 대상에 대한 자비와 구원의 행동이 함께 동반된다. 임신하지 못하는 라헬을 하나님이 기억하실 때, 태의 문이 열리고 아들을 낳게 됩니다(창 30:22-23). 노아의 홍수로 방주에 갇혀 있던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셨을 때 바람이 땅 위에 불게 하셔서 물이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폐허가 되어 재건되지 못한 예루살렘 성의 소식을 들은 느헤미야는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나를 기억해달라는 기도는 하나님이 잊어버리셨을까봐 드리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하신 구원의 은혜를 시행해달라는 간구입니다. 한해를 마무리하며, 그리고 왕으로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우리도 함께 기도합시다. “예수여, 나를 기억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