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보다 더 위험한 것이 졸음운전이라고 합니다. 졸음운전은 음주운전과 같이 운전자의 위기대응 속도와 차량통제 능력을 현저하게 저하시켜 만취상태와 비슷하며, 치사율에 있어서는 음주운전보다 훨씬 높게 나타납니다. 졸음운전은 깊은 잠을 자면서 운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잠깐 존 것입니다. 먼 길, 긴 시간 안전하게 운전해오다가 목적지에 다 와서 깜빡 졸아서 사고를 당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습니까?
오늘 본문에도 “주의하라 깨어있으라(33절), 그러므로 깨어있으라(35절), 깨어있으라(37절)” 반복해서 깨어있으라, 주의하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주님 오심을 기다리며 경건한 삶을 살아오다가 잠깐 한눈팔고, 잠깐 영적으로 잠들었는데, 하필 그때 주님 오시면 얼마나 안타깝겠느냐는 것입니다.
오늘부터 교회력은 새롭게 시작됩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오셨던 주님을 기억하고, 동시에 마지막 심판 날에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는 절기가 대림절입니다. 그래서 대림절 말씀은 종말론적 신앙을 강조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흐름을 잘 알아야 이해하기 쉽습니다. 막 13:1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 제자 중 하나가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라고 묻습니다. 이 말은 “선생님, 저것 보십시오. 저 돌이며 건물이며 얼마나 웅장하고 볼 만 합니까?(공동번역)”라는 의미입니다. 헤롯이 유대인들의 마음을 사기 위해 초라하고 헬라인에게 더럽혀진 스룹바벨 성전을 헐고 정성껏 지은 성전이 헤롯 성전입니다. 성전 본체와 뜰은 착공한지 10년 만에 완공되었지만, 외벽과 성전 수비 요새까지 완공한 것은 건축 개시 83년 만이었습니다. 그러니 제자들이 이를 보고 감탄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반응은 냉담합니다. 이 큰 건물들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고 말씀합니다.
성전에서 나와 감람산에 올라 성전을 마주하고 있을 때,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가 예수님께 “언제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겠습니까? 혹시 그전에 그것을 알 수 있는 징조가 있습니까?”라고 묻습니다. 오늘 본문은 여기에 대답하시던 중 이어진 말씀입니다. 즉 성전파괴가 일어날 시기와 그 전에 있을 징조를 묻는 것에 대한 답변입니다.
주님은 그 징조를 설명하시던 중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성도들을 미혹할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성전파괴의 교훈에서 주님의 재림에 대한 교훈으로 확장해서 말씀하십니다. 성전의 파괴와 종말을 대비하는 자세와 재림과 종말의 때를 준비하는 자세는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주님은 한 가지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다시 오실 날과 때를 비밀처럼 감추신다는 것입니다. 날과 때를 지목하면, 그때를 아는 것의 부작용이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조차 아버지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맡기고 알려고 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다만, 무화과나무 비유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징조는 알 수 있으니, 가까이 올수록 주의하고, 깨어있어, 주님 오심을 대비하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종들에게 권한을 주고 사무를 맡기며 깨어있으라고 명하고 떠난 주인과 같아서 불시에 주인이 도착했을 때, 깨어있지 못하고 잠자는 자들을 보면 낭패를 보게 됩니다.
우리는 새벽이 되면 애굽을 떠날 히브리인처럼 새벽을 기다려야 합니다. 애굽의 풍요로움에 미련을 두고 영구히 살아갈 것처럼 바라보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도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에 너무 많은 미련을 두면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