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의 사건은 오병이어에 이어지는 사건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무리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삼아 자신들의 정치적 욕심을 채우려고 흥분했고, 제자들 역시 예수님이 왕이 되시면 자신들이 ‘벼락출세’를 할 수 있다는 기대에 한껏 감정이 고조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잘못된 기대를 깨뜨리기 위해 주님은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는 예수님이 그 자리를 빨리 떠나시면서 무리들로부터 분리되시는 것이고, 또 하나는 제자들을 갈릴리로 배를 태워 보내면서 풍랑과 싸우면서 정신 차리게 하는 것입니다.
풍랑이는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기적은 마태복음 14장과 마가복음 6장에도 기록된 내용입니다. 여기에도 복음서마다 생략, 첨가, 변형된 부분이 있어서 서로 비교해 보면 이해하기가 좋습니다. 요한복음을 중심으로 정리해 보면 요한복음은 다른 복음서와 달리 생략하거나 단순화하여 건조하게 간단히 기록한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물 위를 걸어오신 장면을 설명하는 것이 가장 짧고 간단합니다. 밤 사경쯤 제자들이 풍랑 때문에 고생한 내용, 예수님이 바람과 파도를 잠재우는 모습, 베드로가 물 위를 걸어보고자 하다가 빠진 사건은 아예 기록하지 않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물 위를 걸어오시거나 풍랑을 잠재우신 능력을 나타내신 것보다는 예수님이 의도하지 않은 헛된 기대를 품지 않게 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말고 예수님이 함께하시면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 주님이 가라고 하신 곳으로 가도 풍랑을 만날 수 있습니다. - 제자들은 예수님이 기도하러 혼자 산으로 가시면서 제자들만 배를 타고 먼저 건너편으로 건너가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배를 타고 건너갔습니다. 그런데 도중에 큰바람이 불어 파도가 항해를 위협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풍랑 없는 삶을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순종하여 갔는데도 풍랑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으로, 말씀에 순종하여 갔는데도 인생의 풍랑을 만날 수 있습니다.
2. 우리 인생에는 예기치 못하고 조절할 수 없는 풍랑도 만날 수 있습니다. -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가버나움으로 건너가라고 하셨을 때, 아무런 이견 없이 배에 오른 것은 항해에 별문제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 대부분은 갈릴리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어부들입니다. 그러나 갑자기 불어온 풍랑에 아무런 손을 쓸 수 없었습니다. 우리 인생에도 예기치 못하고 조절 불가한 상황을 만날 수 있습니다. 내 전공 분야, 특기, 가장 자신 있는 부분의 문제를 만났는데도 예측하지 못하고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만날 수 있습니다.
3. 예수님이 오시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 주님은 불가항력의 고난에 찾아오십니다. 제자들은 풍랑도 두렵고 괴로운 상황이고, 전혀 예상치 못한 예수님이 걸어서 다가오시는 것도 예상치 못한 상황입니다. 두려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셔서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이 본문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듯이 강조되는 표현입니다. 다른 상황이나 대화는 숨기거나 상황설명으로 표현한 반면, 유일하게 이 부분만 직접화법으로 표현했습니다. 주님만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우리 인생에도 예기치 못한 위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코로나 사태가 이렇게 오랫동안 우리를 힘들게 할지, 인류의 과학과 의료체계와 사회 시스템이 코로나 앞에 이렇게 무능력할지 누가 알았습니까? 우리가 타고 있는 현장에 예수님을 영접하면 우리가 가려던 땅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