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 -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많이 낳아 고생 말고 적게 낳아 잘 키우자”, 70년대 -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80년대 -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 “무서운 핵폭발 더 무서운 인구 폭발”, 이렇게 산아제한 인구억제 캠페인을 벌이던 우리나라는 90년대부터 혼자는 외롭다는 의미를 강조하여 “자녀에게 최고의 선물은 동생입니다”라며 출산장려정책과 성비균형정책으로 바뀌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출생아 수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습니다. 출생아 수의 최고 정점을 찍은 60년 한 해 출생아 수가 108만 천 명대에서 2020년에는 27만 6천 명대로 떨어졌습니다. 한 여성이 평생 낳은 자녀의 수를 합계출산율이라고 하는데, 60년에 6.2명, 70년에 4.53명, 80년에 2.83명, 90년에 1.59명, 2020년에는 0.84명입니다.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감소는 사회적으로 큰 문제를 야기합니다. 기본적인 사회 구성이 허물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감소는 교회에도 심각한 교인감소로 이어지게 됩니다. 텅텅 비어가는 서구교회처럼 한국교회도 머지않은 장래에 아이들 소리가 사라지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다음 세대들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안수해주시기를 바라며 인파를 뚫고 예수님께 아이를 데리고 나온 이들이 있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꾸짖으며 막았습니다. 이 모습을 보신 예수님은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고 하시면서 그들을 안수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사람들이 예수님께 아이들을 데려오는 것을 막으며 꾸짖은 것을 보면 아이들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찾아오는 아이들을 용납하여 주셨고, 그들을 안수하신 후에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우리도 아이들, 다음 세대들에 대한 새로운 인식(재발견)이 필요합니다.
1) 아이들을 환영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아이들이 오는 것을 용납하고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아이들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아이들의 관점에서 보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아이들이 존중받는 것처럼 느끼고, 아이들의 입장에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2) 아이들을 위해 투자해야 합니다. 투자한다는 것은 그것의 가치를 알기에 우선순위를 두고 대가를 지불한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투자를 위해 다른 부분의 희생과 배려를 요구하기도 합니다. 제자들이 귀찮아도 아이에게 양보해야 합니다. 다른 일정이 바빠도 예수님께 안수받게 해야 합니다. 이제는 교육부서를 부흥시킨다는 명목으로 몇 명 모이느냐에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을 최고의 교육으로 기독교 지도자로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관점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집안의 자녀 교육을 위해 엄청난 투자를 하는 것처럼 우리 아이들에게 아낌없이 투자해야 합니다.
3) 아이들을 신앙으로 바르게 인도해야 합니다. 교육은 물량 공세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목표와 어떤 철학으로 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안수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가운데 자라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결국 교육의 핵심은 하나님을 잘 믿고, 믿음으로 살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이런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