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코로나 백신 접종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를 ‘코로나에 인류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희망을 맞았다, 코로나 공포에 맞선 과학의 반격’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집단면역이 형성되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사순절을 보내며 코로나 시대에 예수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With Jesus가 되려면, 예수님께 우리 가는 길로 따라오시라고 할 수 없으니, 우리가 주님을 따라가야 할 것입니다.
사순절 두 번째 주, 성서일과의 본문은 마가복음 8:31-38입니다. 이 본문은 내용적으로 앞부분 베드로의 신앙고백과 연결됩니다. 병행구절인 마태복음 16장에서 베드로는 이 신앙고백으로 엄청난 칭찬을 듣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금방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합니다. 최고의 칭찬을 받으신 후에 저주에 가까운 책망을 듣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고난을 받고,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가르치셨습니다. 비로소라는 말은 지금까지는 이것에 대해 가르치지 않았지만, 이제는 가르쳐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고 여기셨고, 그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대한 베드로의 반응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한 것입니다. 붙들고 항변했다는 것은 자살하려는 사람을 뜯어말리며 정신 차리도록 훈계하는 것입니다. 항변하다는 단어의 원어적 의미는 꾸짖다는 뜻이고, 33절에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꾸짖으신 것과 같은 단어를 씁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기대를 저버리는 스승을 꾸짖고, 스승이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가로막는 베드로를 꾸짖으십니다. 예수님의 꾸짖으심은 단호하고, 지나치리만큼 혹독했습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후에 예수님은 주님을 따라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세 가지 가르침을 주십니다.
1) 생각을 지키라 – 33절에서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라고 하셨습니다. 몸은 어디로 가는지 보이고, 제어도 되지만, 생각은 어디로 가는지 보이지 않고, 제어도 안 됩니다. 그러나 생각을 지키지 못하면 몸과 존재 전체가 생각을 따라가게 됩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의 생각이 사탄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겉으로 드러난 행위의 열심을 평가하지만, 주님은 그 사람의 중심 즉 생각과 마음의 동기를 살피십니다.
2) 자기를 부인하라 – 34절에서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라고 했습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제일 어렵게 느끼는 것은 자기 부인입니다. 충성도 하고, 헌신도 하고, 희생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자기를 부인하고 부정하고 죽이는 것은 어렵습니다. 죄인의 옛 자아를 죽이는 것은 할만한데, 자기의, 자기 공로, 자기애를 죽이는 것은 어렵습니다. A.B.심슨 목사님은 “성령님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무덤에 함께 장사지내는 위대한 장의사”라고 표현했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옛 자아를 죽이는 것은 성령의 능력을 덧입을 때 가능합니다.
3)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앞에 보이도록 달고 다니던 십자가 목걸이를 뒤로 넘기고 다닌다거나 바퀴 달린 십자가를 끌고 가는 퍼포먼스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죽고 주가 살고, 내 안에 주가 사시고, 내 삶의 주권을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을 따르려면 먼저 주님이 가신 길을 이해해야 합니다. 주님이 가신 길을 모르면서 주님을 따라가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