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주먹이라는 별명을 가진 복서 ‘마이클 타이슨’이 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그럴듯한 계획이 있다. 맞기 전까지는(Everyone has a plan 'till they get punched in the mouth).” 현실에 직면하기 전까지는 나름대로 승산이 있다고 보지만, 막상 실전에서는 냉혹한 현실의 벽 앞에 우리의 계획과 실력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도 자신의 신앙에 호언장담(豪言壯談)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유다의 배반을 예언하고, 나머지 제자들도 다 예수님을 버릴 것이라고 예고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때, 베드로는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리하지 않겠나이다”라고 호언장담합니다. 더 구체적으로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세 번 부인할 것이라고까지 말씀하시지만,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합니다. 이에 질세라 나머지 제자들도 베드로의 호언장담에 맞장구칩니다.
예수님의 거듭되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베드로와 제자들은 그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예수님을 부인하는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베드로는 왜 이런 실수를 하게 되었을까요?
1) 자기과신 - 지나친 자기 과신은 금물입니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호언장담할 정도로 자기 확신을 가질 수 있을까요? 신앙은 결심이나 오기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정확한 자기 성찰과 주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2) 우월감 - 베드로는 자타가 공인하는 수제자입니다. 보이지 않게 ‘형님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이 공로주의와 비교의식을 통해 다른 제자들에 비해 우월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신앙은 늘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은 다 주를 버릴지라도’라고 하면서 자신은 그렇지 않다는 교만과 우월감이 그를 넘어지게 만들었습니다.
3) 말씀의 경고를 무시함 - 베드로의 호언장담에 예수님은 그의 실패와 부인을 매우 구체적으로 예고하셨습니다.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시기와 상황, 그리고 구체적인 부인 방법까지 정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베드로는 이 말씀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며 대비했어야 합니다.
4) 기도하지 않음 - 오늘 본문에는 나오지 않지만, 이어지는 32절 이하에서는 예수님이 제자들을 데리고 겟세마네 동산으로 기도하러 가십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은 깨어 기도하지 못하고 잠들어 있었습니다. 깨어 있어야 할 때, 깨어 있지 못하고, 기도해야 할 때 기도하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영적으로 위험한 것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순절을 보내며 우리는 우리 자신을 깊이 성찰해 보는 기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도 우리 신앙을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신앙생활을 오래할수록, 충성하는 사람일수록 자기과신과 우월감에 빠져서 시험에 대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어떤지 살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