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하는 말 중에 ‘선 넘지 마’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치적 용어로 레드라인(Red Line)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더 이상 넘어가면 용인하기 힘든 수준으로 넘어서는 안 되는 한계선을 의미합니다. 상대방에 대한 정책을 시행할 때, 실패하더라도 허용되는 한계선을 정해놓고, 그것을 넘을 때 다른 극단적인 강력한 정책으로 전환하는 기준을 의미합니다. 이 선을 넘어버리면 원래의 상태로 되돌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경상도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성격은 앞에서 어떻게 하든 그것으로 끝입니다. 뒤끝은 없습니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뒤끝이 없을까요? 선을 넘지 않으면 뒤끝 없이 깔끔하게 끝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뒤끝 없다는 것만 생각하고 선을 넘는 행동이나 말을 해버리면 사과하고 끝내려 해도 한쪽은 뒤끝 없이 상황이 종료되지만, 당하는 사람은 뒤끝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외도하거나 폭력을 사용하거나 가장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면 이후에 사과하고 용서를 구한다 해도 마음의 앙금이 남아 겉으로는 봉합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감정 깊은 곳에서는 용납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신앙에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습니다. 인간의 연약함이 실수할 수 있고, 원망할 수 있고, 심지어 배신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선을 넘으면 회복하려고 해도 원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베드로가 그랬습니다. 그렇게 호언장담하고 충성을 맹세하며 호기를 부렸지만,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까지 했습니다. 선을 넘어버린 것입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세 번이나 제자들을 찾아오신 것으로 횟수까지 명시하며 기록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찾아오심이 보고 만져보지 않으면 믿지 못하겠다는 도마에게 보고 믿게 하기 위한 것이라면, 세 번째 찾아오심은 심한 죄책감과 절망에 빠져있는 베드로를 회복하고 사명을 주기 위함입니다.
오늘 본문은 같은 내용이 같은 패턴으로 세 번 반복됩니다. 1)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질문하시고, 2) 베드로는 예수님께 사랑하는 줄 주님이 아신다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3)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고 사명을 맡겨주십니다.
베드로를 회복시키시는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랑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무조건 덮어주는 것이 사랑은 아닙니다. 집요하게 베드로의 사랑을 확인하십니다. 똑같은 질문을 세 번 연속적으로 받았던 베드로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차라리 화를 내시거나 잘못을 지적하시거나 책임을 물으면 마음이 편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계속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시며 사랑을 확인하십니다. 이 질문을 받고 베드로는 그 질문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세 번째 그 질문의 의미를 깨닫고 베드로는 근심했다고 했습니다. 어떤 문제든 쉽게 답을 쥐어 주면 깨달음이 적고, 근본적인 변화나 지속적인 회복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정말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신 것입니다.
사랑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랑을 재확인하신 예수님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며 사명을 맡기십니다. 이제 믿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완전히 회복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주님을 따르면 됩니다. 다른 사람 볼 것 없습니다. 오직 주님만 보고 따르면 됩니다. 주님을 사랑합니까? 사랑한다면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