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는 성도의 특권이면서 의무입니다. 우리가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도 생활을 온전히 지속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야심차게 기도의 계획을 세우고 시도하지만, 얼마 못 가서 중단하게 됩니다. 기도와 기도 들으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약화되는 것은 단순히 기도 중단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신앙 자체가 흔들리고 연약해진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가 될수록 기도 응답은 더딘 것처럼 느껴지고,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기도하며 낙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먼저, 불의한 재판관과 지속적으로 찾아가는 한 과부의 이야기를 비유로 들어 설명하시고, 이 비유를 근거로 기도와 믿음에 대해 설명하시며 기도생활에 집중하도록 권면하십니다. 그래서 오늘은 ‘기도에 응답이 없어 보여도 낙심하지 말기’라는 주제로 본문이 주시는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 – 오늘 비유의 핵심은 분명합니다. 예수님께서 비유의 말씀을 하시기 전에 먼저 그 목적을 분명히 하셨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항상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하다가 낙심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한 과부의 모습을 설명합니다. “자주(3절)”, “얼마 동안(4절)”, “번거롭게 하니, 늘 와서(5절)”, “밤낮 부르짖는(7절)” 이러한 모습은 과부에게 여기가 아니고는 원한을 풀 수 없기에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고,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절박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불의한 재판관이 아니다 –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는 일대일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불의한 재판관 비유를 통해 설명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성품을 비약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비유입니다. 먼저 불의한 재판관이 어떤 사람인가를 살펴봅니다. 2절에서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재판관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자는 하나님 편에서 판결할 사람이 아닙니다. 억울한 자를 위해 일하는 자도 아닙니다. 뇌물에 약하고, 교만하며, 하나님의 공의를 왜곡시킬 가능성이 높은 자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원한을 풀어달라고 찾아온 과부의 이야기를 얼마 동안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의 반응과 태도가 바뀝니다. 그 동기는 단순했습니다. 지금도 번거롭게 찾아오는 것이 귀찮았고, 하는 것을 보면 들어줄 때까지 중단하지 않을 것 같아 들어주기 전까지 괴로움을 당할 것이 염려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물며(7절)”가 중요합니다. 불의한 재판관도 밤낮 부르짖는 원한을 외면하지 못하고 풀어주었다면, 공의롭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야, 성도의 기도를 어떻게 외면하시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시며 오래 참지 않고 속히 원한을 풀어주십니다. 기도는 지속적인 요청의 행위로 응답받는 것이 아니라, 신실하고 공의로우시며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의 성품으로 응답받는 것입니다.
3. 기도를 지속적으로 하는 비결은 믿음이다 – 아무리 기도가 중요하고 기도의 능력을 알아도 우리는 현실 앞에 낙심하며 기도를 포기하여 중단하기 쉽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만나고 접하는 현실은 기도한 것과 정반대의 모습으로 다가올 때가 많습니다. 특히 마지막 때가 되면 더더욱 그럴 것입니다. 이때, 낙심하지 않고 기도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은 믿음입니다. 그래서 인자가 올 때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믿음이 흔들리거나 연약해지지 않도록 끝까지 믿음을 굳세게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