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은 시험의 연속입니다. 시험은 실력을 평가하여 당락을 결정하거나 순위를 매기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에서는 일반적인 시험과 다른 의미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더 깊은 신앙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 통과해야만 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시험에 걸려 넘어지게 됩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시험을 통과하셨습니다. 먼저 우리는 예수님에게도 시험이 필요한가, 예수님께도 시험이 시험 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굳이 시험을 통과하신 이유는 예수님도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셨고, 육신의 한계를 넘어서서, 우리를 위한 흠 없고 순결한 제물이 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친히 시험을 이겨내심으로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 모든 믿는 자들을 돕기 위해서입니다. 사순절 첫째 주일을 맞아 예수님처럼 우리도 시험에 넘어지지 않고 믿음으로 넘어서는 신앙을 소유하길 소망합니다.
1. 시험 중에도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 오늘 말씀에 보면 특이한 표현이 나옵니다. 2절에는 예수님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다고 했는데, 1절에 보면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시험을 당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시험에 넘어지지 않고 넘어서는 비결을 보여주십니다. 성령의 도우심 없이 마귀의 시험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성령께서 내 마음과 생각과 행동을 다스리도록 내어드려야 합니다. 내 감정이나 고집이나 완악함이 나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2. 마귀의 시험을 우습게 보면 안 됩니다. - 마귀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시험하는 자입니다. 인간의 몸을 가지시고, 육체의 한계를 알고 집요하게 약점을 공략하는 전술을 사용했습니다. 패배한 후에도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13절에 보면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니라고 했습니다. 공동번역에는 “악마는 이렇게 여러 가지로 유혹해 본 끝에 다음 기회를 노리면서 예수를 떠나갔다”고 번역했습니다. 포기하고 항복한 것이 아닙니다. 다음 기회를 노리며 잠시 떠나간 것입니다. 예수님께도 이렇게 집요하게 시험했다면 우리야 마음 먹고 다가오면 우리 힘으로 이겨낼 수 있겠습니까? 오직 말씀으로만 이겨낼 수 있습니다.
3. 마귀가 노리는 우리의 약점을 알아야 합니다. - 복음서에 보면 마귀가 시험한 것이 세 가지로 나옵니다.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천하만국의 모든 권위와 영광을 네게 주겠다.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는 것입니다. 돌로 떡이 되게 하라는 것은 단순히 그 떡으로 배고픔을 해결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배고픔의 시험, 먹는 시험이었다면 마귀는 돌을 보여주지 않고 먹을 것을 보여주었을 것입니다. 그 앞에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마귀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과 예수님께 돌로 떡을 만드실 능력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를 질 필요가 있겠느냐, 어차피 구원자가 되려면 이 돌들을 떡으로 만들어 굶주린 백성들의 구원자가 되라는 시험입니다. 다른 시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굳이 왜 힘든 십자가의 길을 가느냐는 것입니다. 쉬운 길로 갈 수 있다고 유혹합니다. 딱 눈 한번 감고 마귀에게 절하면 세상의 왕임을 증명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인기, 명예도 성전에서 뛰어내리면 얻게 해주겠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뿌리 깊게 남아 있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약점입니다.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시험을 이겨낼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