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좋은 일이 있을 때, 함께 식사하면서 기쁨을 나눕니다. 엊그제가 둘째 생일이었는데, 하필 성금요일이라 갈등했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을 기념하는 날에 외식을 할 수 있는가 하는 것 때문에 고민하다가 그래도 일 년에 한 번인 생일인데 간소화해서라도 축하해주자 해서 가볍게 축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큰 기쁨은 부활의 소식입니다. 부활의 기쁨을 하나님은 천국 잔치로 함께 즐거워하기를 원하십니다. 이 잔치는 종말론적 잔치에 절정의 선물을 주심으로 최고의 기쁨을 누리게 하십니다.
마지막 날에는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8절)고 말씀합니다. 인류 최대의 절망과 슬픔은 죽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인간의 한계가 죽음이라면, 죽음의 한계는 하나님이십니다.
6절에 보면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신 잔치가 있습니다. 잔치가 열리는 곳은 하나님의 산입니다. 하나님은 이곳에서 천국 잔치를 여시고 사람들을 초청합니다. 여기에는 일부 특별한 사람만 초대받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모든 만민이 초대됩니다. 하나님이 준비하신 메뉴는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입니다.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은 잔치에 미각과 식욕을 북돋우는 최고의 요리입니다. 24장에서는 하나님의 심판의 증거가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는 것(24:9,11)으로 표현되었는데, 하나님이 준비하신 것은 오래 저장하였던 극상품의 포도주입니다.
하나님의 잔치가 열리는 곳에 중요한 행사가 열립니다. 7절에 보면 모든 민족의 얼굴을 가린 가리개와 열방 위에 덮인 덮개를 제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에 나타난 얼굴을 가린 가리개는 장례에 시신의 얼굴을 싸매는 가리개이고, 덮개는 수의를 의미합니다. 가리개와 덮개를 제한다는 것은 죽음의 권세와 죽음의 그늘을 제거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8절 말씀과 같이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입니다. 사망은 살아있는 모든 것을 멸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사망 앞에 모든 생명은 힘을 잃고 굴복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명의 능력은 사망을 영원히 멸하셔서 믿는 자에게서 무기력하게 됩니다. 이 죽음으로부터의 승리는 일시적인 승리가 아니라 영원한 승리입니다.
승리를 경험한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잔치에는 하나님의 위로가 있습니다. 사망권세를 멸하신 하나님은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십니다. 이 말씀은 요한계시록의 종말의 때 있을 일로 예언한 말씀과 동일합니다.
우리는 아직 사망권세가 역사하는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사망을 영원히 멸하시고 우리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주실 날을 믿음으로 소망 가운데 살아갑니다. 성금요일 예배에서도 살펴본 것과 같이 무덤에 계시던 시간은 죽음의 권세에 눌려 침묵하는 시간이 아니라, 십자가 죽음과 생명의 부활 사이의 시간입니다. 이 시간 동안 절망은 소망으로 바뀌어 가고, 불안은 화평으로, 불신은 믿음으로, 거짓은 진리로 바뀌게 되며 죽음의 권세가 부활의 능력에 굴복당하는 시간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9절 말씀과 같이 우리의 하나님,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기다리며, 구원을 보게 될 때 기뻐하며 즐거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라는 말처럼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죽음의 한계를 이기시고 사망을 영원히 멸하신 하나님이 계심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망을 멸하신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죽음을 수동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천국에 대한 소망과 생명의 기대감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사망을 멸하신 주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천국 잔치에 참여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 부활신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