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교회가 갑자기 유명해지고 있습니다. 국민일보, CBS, 기독공보, 서울노회보에 우리 교회가 소개된 데 이어, C채널이라고 하는 기독교TV에서도 우리 교회를 취재하여 방영하고 싶다고 해서 취재 일정을 조율중에 있습니다. 언론에서 우리 교회를 주목하고 있는 이유는 청년들과 다음세대의 희망을 우리교회를 통해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런 몸부림이 세상 여기저기에서 이리저리 치이고, 때로는 스스로 무너지는 한국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국교회의 부흥을 일으키는데 얼마나 효능이 있을까 하는 한계를 느낍니다. ‘예전에는 교회가 세상을 걱정했는데, 요즘에는 세상이 교회를 걱정한다’는 말처럼 우리 마음을 무겁게 하는 명제도 없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교회는 세상의 소망이다’, ‘교회가 희망이다’ 이렇게 외칠 수 있을까요?
제 목회 사역에 구체적인 도전을 받은 계기가 있습니다. 안식년에 미국 풀러 신학교에서 청강할 때, 조교와 식사를 같이 하면서 나눈 대화 중에 받은 도전입니다. 이분은 원래 사업가로 중국에 진출하여 한인교회 출석하다가 예수님을 만난 분입니다. 너무 은혜를 심하게 받았는지, 사업장을 직원들에게 맡기고 자신은 목회를 하겠다고 결단했습니다. 그래서 신학교 중에 좋은 학교가 어딘지 수소문하다가 풀러 신학교로 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분의 특징은 늦게 예수님을 만나고, 세상에서 사업을 하던 시각으로 한국교회를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보다 객관적이고, 현실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분이 흥분하며 답답함을 토로한 내용이 이런 것입니다. 벌써 몇 년 전부터 ‘한국교회는 위기다, 교회의 다음 세대가 걱정이다, 이제 앞으로 한국교회는 미래가 불투명하다, 한국교회도 서구교회처럼 노인들만 모이는 교회가 될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여기에 대한 대책을 내놓는 교회가 없다는 것입니다. 도리어 교인들끼리 싸우고 분열되고 내부 갈등의 문제로 교회의 모든 에너지를 고갈하고 있습니다. 사업가 출신으로 이분은 한국교회의 이런 모습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사업가는 현재 매출 분석과 시장조사, 그리고 미래의 소비패턴 전망 등 철저하게 분석하고 대책을 세워나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못 하면 그 기업은 망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서는 반드시 철저한 분석과 거기에 합당한 대책을 세우고, 변화를 꾀해야 하는 것이 체질화되어 있는데, 교회는 그런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고, 위기론만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런 대책과 대안이 부재한 문제의식은 패배주의와 실패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점철되고 있습니다.
교회의 가장 큰 손실은 내부 갈등 문제로 분열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탄이 교회를 흔들고 무너뜨리는 데 가장 좋아하고 효과를 보는 전략입니다. 교회 안에 누구 편, 누구 편, 갈라 파벌을 만들거나, 구체적인 사안을 놓고 교회 안에서 시시비비를 가리며 다투고, 신학적 노선과 견해가 다르다 하여 서로 정죄하고 비판하게 했습니다. 심한 경우에는 세상 법정에까지 가서 고소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것들이 고린도교회에 있었던 일들입니다.
한국교회도 그렇고, 우리 명륜중앙교회도 이런 과정을 겪었습니다. 교회의 분열과 다툼의 역사가 있어왔습니다. 싸움보다 중요한 것은 화해의 기술입니다. 인간적 약점은 의견충돌과 다툼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도 바나바와 다투고 갈라서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화해하고 봉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나의 영적 성장과 성숙의 자양분이 되고, 복음의 진보를 이루고, 공동체의 회복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교회 역사를 시대별로 연극으로 올리고 있는데, 금년 연극은 교회의 분열과 아픔을 넘어 화합과 통합의 길로 가야하는 숙제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역사를 통해 귀한 교훈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