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누구나 한두 번 시도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성과를 내고 목표를 이룰 수 없는 것이 있다는 말입니다. 조용히, 부지런하게, 그리고 매일 꾸준히 하는 것이 어렵기에 많은 사람들이 시작했다가 금방 포기하거나, 시도조차 하지 않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됩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천국의 문은 열려 있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천국의 문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본문에는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다른 복음서 내용들을 종합해보면 요즘 젊은이들 표현으로 사기캐(사기라고 생각될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지닌 캐릭터)입니다. 세상적으로 부자 관원에, 종교적으로 바리새인으로 율법을 문자적으로는 다 지킬 정도의 믿음 좋은 성실한 젊은이입니다. 외모에 대한 평가만 없을 뿐, 모든 면에 흠잡을 데 없는 차별화된 인물입니다.
이런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와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질문합니다. 중요한 질문이지만, 질문의 접근방식이 잘못되었습니다. 영생에 이르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한다는 전제의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전제는 신앙의 본질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내가 이정도 했으면 영생이 보장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다른 사람과 다른 취급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깨우쳐 주시기 위해 대화를 이어가십니다. 십계명 중 몇 가지를 언급하시자 이 사람은 이런 계명들은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대답합니다. 이런 훌륭한 조건을 갖춘 사람이 영생에 대해 잘못된 개념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신 주님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말씀합니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와서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합니다. 재물이 많은 고로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여 갔다고 했습니다.
이 일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대한 교훈을 가르치십니다.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다.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지나가는 것보다 어렵다”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그런 조건이라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겠는가 하며 부담을 갖습니다. 주님을 따른다고 모여든 제자들 역시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은 있었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도 마지막에는 큰 권세를 누리고 부자가 되고자 하는 욕심을 채우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베드로가 ‘우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습니다.’라고 하며 나섭니다. 주님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 포기할 수 있는 자가 현세와 내세에 영생을 얻을 수 있고, 박해도 겸하여 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먼저 된 자도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다고 말씀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일수록 끝까지 완주하기가 어렵고, 순위도 바뀌기 쉽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경주는 저절로, 운에 따라 순위가 뒤바뀔 수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자가 은혜로 최고가 되거나 선두주자가 된다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먼저 시작했다고 해서 안심해서도 안 되고, 늦게 출발했다고 낙심할 것도 아닙니다. 힘든 믿음의 경주, 누구나 참여할 수 있지만, 아무나 완주하고 앞서갈 수 없음을 알고 참여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