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십 자 가‘
윤동주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윤동주의 '십자가'라는 제목의 시입니다.
나라를 잃고 이국 땅을 떠도는 젊은이의 자기 결단이 표현되고 있지요.
저는 윤동주가 예수를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라고 부르는 부분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주님의 생애는 그야말로 괴로운 것이었지요. 예수님처럼 괴로움을 당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분처럼 부당하게 대우받고 모진 고통을 당해야 했던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러나 그분은 그 괴로움 속에서도 행복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보다 행복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윤동주의 영적 통찰력도 보통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행복하게 사셨던 분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저는 예수님이야말로 행복을 정의하고 어떤 행복이 진짜 행복인지를 판단하시는 분으로 보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행복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괴로움 속에서도 행복하게 사셨고, 또한 우리에게 행복을 나누어주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