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기엔 우리의 인생이 너무나 귀하다”
어느 의과대학 교수가 학생들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한 부부가 있는데, 남편은 매독에 걸려있고, 아내는 심한 폐결핵에 걸려있다. 이 가정에는 아이들이 넷이 있었는데, 하나는 며칠 전에 병으로 죽었다. 남은 세 아이들도 결핵으로 누워 살아날 것 같지 않다. 그런데도 이 아이들의 어머니는 현재 임신중이다. 자,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그러자 한 학생이 대뜸 소리쳤습니다. 교수님, 즉시 낙태 수술을 해야 합니다. 이 때 교수가 말했습니다. 자네는 방금 베토벤을 죽였네.
이 불행한 환경에서 다섯 번째 아이로 태어난 사람이 바로 베토벤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매독에 걸려있고, 4남매 가운데 하나는 이미 죽었습니다. 3명의 아이들도 결핵에 결려 살 희망이 없는데, 중증 폐결핵의 어머니가 또 임신을 했습니다. 오늘의 의료적 판단으로는 낙태해야 한다고 결정을 내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바로 그 아이가 ‘음악의 성자’ 베토벤이 되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눈에 보이는 대로 쉽게 판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스스로의 지식을 너무 과신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쉽게 정죄하고, 너무도 쉽게 포기합니다. 그러나 이는 매우 잘못된 처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신 생명은 그렇게 함부로 판단할 만큼 무가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인생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훨씬 오묘하고 온갖 기적으로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수준 이하라고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자기 자신이 부족하다고 판단하여 스스로 포기해서도 안됩니다. 끝없이 사랑을 베푸시고, 고치시고, 위로하시고,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눈으로 ‘너’와 ‘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언제나 참고 기다리면서 모든 것을 합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때때로 시련의 골짜기에 굴러 떨어지고 비오듯 눈물이 쏟아지더라도 하나님의 기적을 기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인간의 생각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따라 우리가 이 땅에 보냄을 받았다면 ‘나’도 귀하고, ‘너’도 귀합니다. 기적적인 역사를 기대하기에 충분한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사실이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에 대해 포기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땅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사4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