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마다 예수님의 공생애 시작에 대한 설명이 약간씩 다릅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의 공생애 시작을 시험을 당하신 후 갈릴리로 돌아오신 후 어린 시절부터 자라신 고향 나사렛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신 것으로 묘사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예수님의 취임 설교”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취임사나 목사의 부임설교는 단순한 인사말이 아니라 앞으로의 사역 방향과 청사진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를 여는 나사렛 회당 설교 본문은 구약성경 이사야 61장 1-2절의 말씀이었습니다. 주의 성령이 임하고, 기름을 부으시고 보내어 하나님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바벨론에서 포로생활하며 고통 가운데 있는 유다 백성들을 위로하기 위한 이사야의 선지자로서의 사역을 설명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자신의 사역을 통해 앞으로 오실 메시아에 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회당에서 이 말씀을 읽으시면서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라는 말씀을 시작으로 예수님 자신이 이사야가 예언한 앞으로 오실 메시아이며, 지금 눈앞에서 보고 있고, 그가 전하는 말씀을 듣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 말씀에 대한 반응은 복합적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은혜로운 말을 놀랍게 여겼지만, 갑자기 예수님을 인간적인 시각인 요셉의 아들로 규정하면서 분위기는 싸늘해졌습니다. 은혜스러웠던 예수님의 취임설교에 찬물을 끼얹은 것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이러한 분위기를 읽은 예수님은 그들의 생각을 두 가지 표현으로 설명하셨습니다. “의사야, 너 자신을 고치라”는 속담을 통해 “우리가 들은바 가버나움에서 행한 일을 고향에서도 행하라”는 속마음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또 하나의 속담으로 응수하십니다.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이러한 자들에게 두 가지 구약의 예를 들어 그들의 잘못을 책망하며 마지막 기회를 주십니다. 하나는 엘리야가 많은 유대인 과부에게는 기적을 베풀지 않고 이방인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만 은혜를 베푼 것이고, 또 하나는 엘리사가 많은 유대인 나병환자에게는 치유하지 않고, 오직 이방인 수리아 사람 나아만에게만 치유의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은혜를 입은 자들은 모두 이방인이었고, 심지어 나아만은 적대적인 국가의 장군이었습니다.
나사렛 회당에서 이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자들은 크게 화가 났습니다. 회당에서만이 아니라 동네에서도 쫓아냈고, 심지어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 밀쳐 떨어뜨리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누구에게나 열려있습니다. 이방인에게도 차별이 없이 열려있고, 심지어 이스라엘에 적대적인 나라 장군에게도 열려있습니다. 문제는 신분이나 조건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에 얼마나 열려있고, 순종함으로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사야에 예언된 메시아로 우리 주님이 오셨습니다. 가난한 자, 포로 된 자, 눈먼 자, 눌린 자에게 회복과 치유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우리는 어떠한가요? 나사렛 회당에 앉아 있는 유대인들처럼 선민의식이나 영적 엘리트의식에 사로잡혀 은혜의 자리로 나가지 못하고 있지는 않나요? 주님이 취임설교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치유와 회복의 은혜가 우리에게도 임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