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로미오와 줄리엣”을 읽어 보았느냐고 물었을 때, 로미오는 읽었는데 아직 줄리엣은 못 읽었다고 대답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듯이 우리 인간도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분리할 수 없는 두 개의 자아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M.R.디한은 “시몬 베드로”라는 책에서 부모로부터 타고난 성품인 시몬과 신앙고백 위에 예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이름인 베드로(반석)라는 성품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시몬은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이고, 베드로는 예수님이 지어주신 이름입니다. 시몬은 거듭나기 이전의 옛 성품을 의미하고, 베드로는 신앙고백을 통한 거듭난 모습을 의미합니다. 베드로에게 이 두 개의 이름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은 변덕스럽고, 다혈질이며, 화를 잘 내고, 마음이 강직하지 못한 시몬의 모습과 오순절 설교자이며 수제자로서의 리더십, 천국 열쇠를 위임받은 자로서의 모습을 동시에 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두 가지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미 거듭났지만, 아직도 남아 있는 옛 성품이 우리를 비참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어느 순간 베드로인줄 알았는데, 여실히 시몬의 모습이 나타날 때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21장 15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베드로를 찾아오셔서 말씀을 나누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때 예수님은 베드로를 부르실 때 “요한의 아들 시몬아”라고 부르십니다. 마태복음 16장 18절에서 “너는 베드로(반석)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하시면서 친히 베드로라는 새 이름을 주신 것과는 달리 옛 이름인 시몬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또한 요한의 아들(바요나)이라는 부연설명까지 붙여가면서 굳이 부모로부터 타고난 옛 성품을 상징하는 시몬이라고 부르십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주님을 부인하고 도망갔던 연약한 시몬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셨습니다. 성령을 의지하고, 믿음의 반석 위에 서지 않으면 언제든 시몬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셨고 인정해주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여러 차례 호언장담하며 칼을 휘둘러 예수님을 보호하려고 했던 호기를 부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만용과 호기만으로는 믿음을 지킬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신앙의 현실 자각 타임을 갖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베드로로 세워주시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세 번 물으십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그때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이 대답을 들으신 예수님은 “내 양을 먹이라”고 다시 사명을 주셨습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사랑이라는 동일한 단어로 번역되었지만, 원문에는 다르게 되어 있습니다. 1) “아가파스 메?” “필로 세” 2) “아가파스 메?” “필로 세” 3) “필레이스 메?” “필로 세” 이것은 아가페의 사랑, 필로스의 사랑을 구분하는 헬라어의 특성을 알아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1) “이제는 내가 너희에게 베푼 아가페의 사랑으로 나를 사랑할 수 있겠니?” “주님, 사랑하기는 하지만 제 모습을 볼 때, 필로스의 사랑으로밖에는 사랑하지 못하는 것을 주님이 아십니다.” 2) “내가 십자가 사랑으로 사랑했으니 아가페의 사랑으로 사랑할 수 있지 않겠니?” “주님,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필로스의 사랑 밖에는 할 자신이 없습니다” 3) “그러면 필로스의 사랑으로는 사랑할 수 있겠니?” “가만히 보니 필로스의 사랑으로도 할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주님을 사랑한다면 필로스의 사랑밖에는 못하는 것을 주님이 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