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요일 창세기 강해를 통해서 야곱의 책임감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책임감만 아니라면 하고 싶지 않은 것도 책임감이 있다면 어쩔 수 없이 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책임감보다 훨씬 더 무겁고 강력한 것이 사명감입니다.
생명(生命)은 한자로 보면 살라는 명령입니다. 생명체(生命體)는 살라는 명령을 이루는 몸입니다. 생명(生命)에는 반드시 생명을 주신 분이 맡기신 사명(使命)이 있습니다. 사명이란 살아 있는 생명이 반드시 이루어야 할 어떤 것입니다. 생명은 사명이 있을 때, 의미가 있고, 가치가 극대화됩니다. 사명이 있는 사람은 죽지 않습니다. 사명이 남아 있는 자는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습니다.
사명은 죽더라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사명을 위해서는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사는 사람은 사명을 모르는 사람이 볼 때는 아까운 생명을 포기한 바보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명을 아는 사람에게는 가장 의미 있고, 가장 보람있고, 가장 행복한 인생입니다.
예전에 이용규 선교사님의 “내려놓음”이라는 책을 통해 내려놓음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내려놓음’에 대해 이야기하면, 바보 같은 사람들은 사명과 비전을 내려놓습니다. 그리고 포기하는 것을 내려놓음이라고 착각합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비전을 품고 사명을 생각하라고 했더니 헛된 욕망과 욕심을 품고 그것이 비전이나 사명인 줄 착각합니다. 개인도 가정도 교회도 사명을 위해 살아가고, 사명을 감당할 때 가장 행복합니다.
우리는 지난주에 다시 교회를 생각하며 초대 예루살렘교회에 대한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주에는 초대교회의 또 다른 교회인 안디옥교회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사도행전 13장 1절에 보면 안디옥교회의 지도자들의 명단이 나옵니다. 이 명단을 살펴보면 동질성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동역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신앙의 본질을 충실히 행하고 있었습니다. 선지자들과 교사들을 통해 말씀을 배웠고, 금식하며 기도하기에 힘썼습니다. 또한,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했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하나님이 주신 사명에 순종함으로 행동했습니다.
성령께서 안디옥교회에 주신 말씀은 안디옥교회의 지도자들 중에 가장 소중한 두 사람, 사도바울과 바나바를 따로 세워 1차 선교여행의 선교사로 파송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안디옥교회는 1차, 2차, 3차 선교여행을 보내며 후원하고, 사도바울을 선교에 헌신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만약 담임목사가 청년부를 살리는 것이 사명이라고 하면서 다른 사역은 부목사님들께 맡기고, 청년부 사역에 ‘올인’하겠다고 하면 교회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안디옥교회는 선교를 사명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바나바와 사울을 선교사로 파송했습니다.
왜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물과 배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을까요? 주님이 주신 사명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 사명과 비전을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같은 비전을 품고, 같은 사명을 위해 함께 최선을 다하는 드림팀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는 우리 명륜중앙공동체가 사명에 의해 움직이고, 사명을 위해 살고, 사명에 반응하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