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처럼 잡히지 않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지쳐가기 쉽습니다. 뉴 노멀이라고 하는 새로운 질서, 새로운 규범에 적응해야 하는데, 우리는 여전히 코로나 이전을 그리워하기 때문에 더 힘들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처음에는 코로나 이전의 B.C.(Before Corona)와 코로나 이후의 A.D.(After Disease)로 구분했지만, 요즘에는 그 사이에 D.C.라는 개념이 새로이 생겼습니다. During Corona입니다. 이제 코로나 이전의 기억은 가물가물해지고, 코로나 이후는 아득하게 보이지 않는 상황입니다. 코로나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코로나라는 괴물과 싸우는 과정에 있습니다.
이 코로나를 겪고 있는 D.C.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기본기를 다지고, 본질로 돌아가고,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붙잡아야 할 기본기, 본질, 중심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의 생각과 삶을 붙들어 매는 것입니다. 교회에 모이지 못하게 될 때, 더욱 말씀으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래서 지난주부터 말씀 묵상 시리즈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시편 119편은 답관체(踏冠體, acrostic) 형식의 시입니다. 총 22연으로 이루어졌고, 한 연은 8절로 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어 알파벳이 22개인데, 알파벳 한 개당 8절씩 총 176절로 되어 있는 성경에서 가장 긴 장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시의 주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에 대한 체험과 고백을 이렇게 176절에 걸쳐 기록할 수 있다는 것은 시인이 얼마나 하나님 말씀에 대한 애정과 사모함을 가지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교과서나 교재 같은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 삶의 인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인생을 성숙케 하고, 지혜롭게 하며, 우리 삶을 의의 길로 인도하는 규범이 됩니다. 말씀이 우리 삶에 깊숙이 스며들어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언어, 그리고 가치관과 삶의 방식들에 영향을 끼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의 날선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썩은 무도 자를 수 없는 무뎌진 날로 방치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책보다도 영향을 주지 못하는 말씀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유튜브나 카톡을 통해 전해지는 것들만도 영향을 주지 못하는 말씀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말씀 묵상이란 “매일 일정한 시간과 장소를 정해서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묵상이라는 ‘Meditation’의 어원은 ‘메디칼루스’라는 라틴어로 약(藥, Medicine)이란 어원과 같습니다. 약을 먹으면 약이 몸으로 들어와 온몸에 퍼져 약효를 나타내듯이 말씀을 묵상하면 그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와 생각이나 삶에 말씀의 영향을 미쳐 우리를 살리게 합니다. “걱정할 줄 안다면, 묵상하는 방법도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걱정은 부정적인 문제를 계속 반복해서 생각하는 것이고, 묵상은 우리의 문제 대신 하나님의 말씀에 초점을 맞춰 계속 생각하는 것이다(릭 워렌, 목적이 이끄는 삶 中)
그러나 말씀 묵상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①습관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 ②성경이 어렵기 때문, ③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나하나 그 장애물을 극복해 가면서 말씀 묵상의 자리로 조금씩 더 깊이 들어가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