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신학생이 교육전도사로 부임하며 첫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설교를 할까 고민하다가 예전 주일학교 다닐 때, 흥미진진하게 들었던 오병이어에 대해 설교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준비해서 주일에 설교했습니다. 그런데 너무 긴장한 나머지 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먹이셨다’고 해야 하는데, 그만 ‘물고기 2천 마리와 보리 떡 5천 개로 다섯 명을 먹이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이런 능력이 있으신 분입니다. 믿습니까?’라고 외치며 아멘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아멘으로 화답하기는커녕 킥킥대며 웃기 바빴습니다. 순간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후로는 어떻게 설교했는지 모르게 설교를 끝내고 내려왔습니다.
다음 주일이 다가오자 지난주 실수를 만회하고자 같은 본문, 같은 제목으로 설교를 잘 준비해서 강단에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 떡 다섯 개로 5천 명이 넘는 사람을 먹이시고도 열두 광주리나 남게 하신 분입니다. 예수님께 이런 능력이 있음을 믿습니까?”라고 외치자 아이들이 모두 “네. 아멘!”라고 외칩니다. 너무 확신에 찬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놀라서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믿을 수 있지요?” 그러자 한 아이가 대답합니다. “지난주 설교에 있었던 물고기 2천 마리와 보리 떡 5천 개를 나눠 주면 되요”
이렇게 오병이어의 기적은 사복음서에 모두 기록된 유일한 기적이며, 주일학교 시절부터 단골로 등장하는 중요한 설교 주제입니다. 기적은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는 사건입니다. 그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합리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나 본질에서 벗어난 해석의 시도가 있어왔습니다. 예를 들면 사람들이 각자 도시락을 가지고 왔었는데, 누구도 먼저 자신의 도시락을 남에게 주기를 꺼리고 있을 때, 어린아이가 자기 도시락 내놓는 것을 보고 모두 꺼내 나누어 먹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웃사랑과 나눔의 윤리를 가르치는 교훈으로 여기는 것이죠. 때로는 자신의 오병이어를 드린 아이처럼 우리도 주님께 헌신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빈 들에 음식물 남은 것을 수거해서 환경오염을 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해석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해석들을 잘못된 해석이라거나 틀린 것이라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 의미로 은혜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본받고 따라야 할 교훈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병이어의 기적의 핵심은 이런 것이 아닙니다. 무리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을 먹이신 주님께서 장차 우리의 죄를 대속하고 구원하시기 위해 생명의 떡으로 자신을 내어주실 십자가 대속의 사건을 예표하는 사건입니다. 그 자리에서 주님이 주신 떡과 물고기를 먹은 자들 중에 이러한 의미를 아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떡과 물고기를 통해 주님 자신을 주시고 계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다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주님의 마음,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주님의 사랑과 희생을 기억할 수 있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나누고 전달하는 도구로 쓰임 받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