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사람이 칭찬과 인정을 받고, 내심 칭찬과 인정을 기대했던 자신은 주목받지 못해 속상한 경우가 있습니다.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믿음이 작은 자, 의심하는 자(14:31), 믿음이 작은 자, 깨달음이 없는 자(16:8,9)로 책망받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개처럼 취급하는 이방인에다 당시 사회적으로 무시를 당하던 여인이지만 예수님께 “네 믿음이 크도다”라고 그 믿음을 극찬 받은 경우가 있습니다(15:28). ‘크도다’라는 말은 헬라어로 ‘메갈레’인데, 메가톤급의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갈릴리의 게네사렛에 계시다가 이방 땅인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에 한 여인이 나옵니다. 이 여인은 가나안 여인이라고 했는데, 마가복음에서는 헬라인이고, 수로보니게 족속이고,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여인이라고 설명합니다. 무엇이 이 여인으로 하여금 예수님께 극찬을 받은 믿음의 여인이 되게 했을까요?
1. 겸손한 믿음이었습니다.
이 여인은 당시 사회적으로는 문화적 우월감을 가지고 있는 헬라인이고, 수로보니게, 페니키아 문명의 후예입니다. 그들이 볼 때, 갈릴리에서 온 예수는 무시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상황이 이 여인을 겸손하게 만들었습니다. 자신의 딸이 귀신들려 고통당하는데, 다른 곳에서는 해결을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찾아 나왔습니다. 체면 불구하고 소리 질러 나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외쳤습니다.
2. 사랑이 있습니다.
사랑은 책임지게 합니다. “사랑은 책망하지 않고 책임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랑은 희생하게 합니다. 사랑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미친 사람처럼 보이는 귀신 들린 딸도 엄마에게는 너무나 소중하고 사랑하는 딸입니다. 자녀가 조금만 힘들어해도 그것을 지켜보는 부모는 몇 배 더 힘듭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딸을 온전한 모습으로 회복시키기 위해 애끊는 심정으로 나온 것입니다.
3. 장애물을 극복하는 믿음이었습니다.
이 여인이 예수님께 나아가는 데는 여러 가지 장애물이 있었습니다. 가장 큰 장애물은 예수님의 외면과 무관심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절정은 무시당함에 있었습니다. 겸손하게 나갔는데, 무시를 당합니다. 개 취급을 당하고 모욕적인 대우를 받습니다. 여기에서 무너졌으면 거기서 끝나는 겁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끝까지 겸손했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시험에 걸려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4.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를 믿었습니다.
사람에게 본심을 아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 보고 오해하기 쉽습니다. 내가 지금 처한 상황만 보고 하나님에 대해 오해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본심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 네 가지 믿음이 있는지 점검해 보면 좋겠습니다. 우리에게 겸손함이 있나요? 책임지는 사랑이 있나요?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도 그것을 끝내 극복해 내는 믿음이 있나요? 우리 주님이 어떤 분인가를 확신하고 흔들리거나 의심하지 않는 믿음이 있나요? 이런 믿음을 가질 때, 주님은 우리의 믿음도 칭찬해 주실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신앙이 주님께 극찬까지는 아니더라도 칭찬받는 믿음이 되길 소망합니다.